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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길로만 가는 사람들

취업난 속 무지성 대학원 진학, 결국엔 LLM으로 수렴하는 현실, 그리고 그 다음 기술 시장에 대한 생각

정해진 길로만 가는 사람들

정해진 길로만 가는 사람들

취업 시장이 얼어붙을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정해진 길을 찾는다.
학점도 챙기고, 자격증도 따고, 인턴도 넣어보고.. 떨어지면 대학원 고민을 시작한다.
겉으로만 보면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시간을 벌 수 있고, 이력서도 채울 수 있고, 아직 준비 중이라는 명분도 생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제 대학원은 더 이상 나오기만 하면 스펙이 되는 루트가 아니다.
특히 AI 관련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취업이 애매해지면 일단 대학원이라도 가자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면.. 이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자유롭진 않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연구 주제, 프로젝트 방향, 논문 키워드, 심지어 커리어의 결까지 상당 부분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종착지는 대개 비슷하다.

결국 LLM이다.


무지성 대학원이라는 선택

대학원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전혀 아니다.
깊게 연구하고, 한 분야를 파고드는 사람들에게 대학원은 여전히 의미 있는 공간이다.
문제는 대학원이 아니라 목적이 없는 대학원이다.

일단 여기 들어가 있으면 몇 년은 핑계없이 미룰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심리가 깔려 있다고 보는데..

AI 분야에 관련된 대학원에 들어간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강화학습도 있고, 컴퓨터 비전도 있고, 멀티모달도 있고, 갈 수 있는 곳은 많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돈이 어디로 흐르는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교수의 연구비가 나오는 방향,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는 방향, 과제가 열리는 방향, 논문이 잘 뽑히는 방향.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학생은 결국 자연스럽게 현재 가장 불타는 연구 방향으로 끌려간다.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분야가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점점 하나의 중력장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LLM으로.

강화학습을 하더라도 LLM과 결합되고,
비전을 하더라도 LLM과 결합되고,
에이전트를 하더라도 결국 기반 모델 위에서 논의된다.

이쯤 되면 대학원에 간다는 말은 점점
LLM 생태계 안에서 어느 역할을 맡을지 정한다에 가까워진다.

그게 진짜 자신이 원하는 연구라면 상관없다.
그런데 취업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들어간 사람에게 이 구조는 꽤 잔인하다.
도망치려고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가장 거대한 유행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되기 때문이다.


LLM은 정말 끝판왕일까

나는 LLM이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대단해서 문제라고 본다.
지금 시점에도 여전히 많은 영역을 소화해내고, 생산성 강화의 표준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기대를 건다.

하지만 대단하다는 것과 완전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LLM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언어 패턴과 추론의 흔적이 대규모로 학습된 시스템에 가깝다.
입력된 문맥을 바탕으로 다음에 올 확률이 높은 토큰을 예측하고 그 예측을 연쇄적으로 이어 붙인다.
겉으로 보기엔 사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결국 확률 분포 위에서 움직이는 구조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성능이 아니라 구조이다.

이 구조는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완전함에 도달하기 어렵다.
모델이 커지면 좋아질 수는 있다.
데이터가 늘어나면 더 그럴듯해질 수는 있다.
추론 시간과 후처리 기법을 덧붙이면 더 안정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건 어디까지나 오차를 줄이는 작업이지 오차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작업은 아니다.

LLM의 출력은 필연적으로 분포를 따른다.
어떤 질문에는 매우 높은 확률로 좋은 답을 내놓고,
어떤 질문에는 그럴듯하지만 틀린 답을 내놓고,
어떤 질문에는 자신감 있게 헛소리를 한다.

이건 단순한 버그가 아니다.
조금만 더 키우면 해결될 문제도 아닌 그 모델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그런 것이다.

쉽게 말해서 LLM은 세상을 정답의 집합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확률의 공간으로 다룬다.

그래서 완벽할 수 없다.


돈을 퍼부으면 해결될까

이쯤 되면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럼 연산량을 더 늘리면 되지 않나?”
“데이터를 더 모으면 되지 않나?”
“하드웨어가 더 좋아지면 되는 거 아닌가?”

당연히 일정 부분은 맞다.
더 큰 모델, 더 긴 컨텍스트, 더 많은 도구 사용, 더 정교한 파이프라인은 분명 성능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여기엔 착각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성능 향상을 보면서 구조상의 한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성능이 올라감에 따라서 한계가 작아보일 뿐이다.

문장을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수는 있다.
논리적 일관성을 더 오래 유지할 수는 있다.
환각도 물론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불완전성의 근본 원인은 계산량 부족만이 아니다.

언어 자체가 원래 모호하기도 하고 세계 자체가 원래 불완전하게 돌아간다.
인간의 질문도 애초에 완벽하진 않다.
심지어 인간이 만든 정답들 조차 문맥에 따라 흔들리기도 한다.

LLM은 그 불완전한 언어와 세계를 또 다른 확률적 구조로 다루는 시스템이다.

즉, 이 문제는 단순히 컴퓨터가 구려서 생긴 게 아니다.
세계를 설명하는것 자체가 모호하고 그 모호한 매개를 다시 확률적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이건 생각보다 깊은 벽이다.


양자컴퓨터가 등장해도 답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양자컴퓨터를 해결책마냥 꺼내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다 뒤집히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그런데 나는 이 전망에도 꽤나 회의적이다.

양자컴퓨터는 분명 특정 부분에서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최적화, 시뮬레이션, 암호 관련 문제 등에서 기존 계산 패러다임과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LLM의 근본적인 한계를 날려버리는 만능 열쇠가 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핵심은 단지 계산 속도가 아니라
무엇을 계산하느냐이기 때문이다.

양자 측정 자체도 확률적이다.
그리고 LLM의 불완전성은 CPU가 느리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와 의미, 세계와 모델의 차이에서 생긴다.

다시 말해서 양자컴퓨터는 더 강한 엔진이 될 수는 있어도 지금의 문제를 자동으로 다른 종류의 문제로 바꿔주진 않는다.

엔진이 더 강해진다고 해서 지도가 갑자기 완전해지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더 큰 언어 모델 하나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는 시대는 언젠가 천장에 부딪힌다.
그 천장은 성능이 아니라 구조에서 올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다음 판은 어디냐

답은 단순하다.

LLM 치킨게임에서 나가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모델, 같은 벤치마크, 같은 프레임워크, 같은 논문, 같은 투자 흐름 안에서 경쟁하게 되면 결국 승부는 자본전이 된다.
그 판에서 개인이 이길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든다.

다음 시장은 오히려
LLM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영역,
언어 모델 하나 던져 넣는다고 끝나지 않는 영역,
현실 세계의 맥락과 물리성과 도메인 지식이 필요한 영역에서 열린다.

그 대표적인 방향이 바이오와 로봇이다.

바이오

바이오는 데이터도 어렵고, 맥락도 어렵고, 실험도 어렵다.
생물학 지식 없이 코드만 잘 짜서는 깊게 들어가기 어렵고 반대로 생물학만 알아서는 대규모 데이터나 자동화 파이프라인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컴퓨터공학 베이스를 가진 사람이 바이오 문맥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순간 희소성이 급격히 올라간다는 것이다.

생물학자는 코드가 약한 경우가 많고 개발자는 생물학의 맥락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로봇

로봇은 더 노골적이다.
센서, 제어, 물리 세계, 실시간성, 안정성, 하드웨어 제약까지 전부 엮여 있다.
LLM이 보조 도구로써 강력할 순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완결되지 않는 부분이다.

결국 현실 세계와 맞부딪히는 산업은 AI만 잘 다룬다고 정복되지 않는다.
여기엔 구현력, 시스템 감각, 실험 감각, 도메인 지식 이해가 동시에 필요하다.

즉, 다음 시장은 AI를 안 쓰는 시장이 아니라
AI를 쓰되 언어 모델만으로는 못 해먹는 시장이다.


왜 경계인이 희소해지는가

한 사람이 한 평생 동안 여러 분야에서 각각 정점 수준의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흔히 한 분야를 깊게 파는 데 1만 시간? 혹은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그 말이 절대적인 진실인가와는 별개로, 적어도 핵심은 맞다.
전문성은 아무렇게나 생기진 않으니까..

한 분야를 제대로 익히는 데에도 긴 시간이 드는데
두 분야를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희소한 건 두 분야의 정점이 아니라
두 분야를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A 분야의 전문가이고 B 분야의 준전문가인 사람.
혹은 B 분야의 현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A쪽 분야 기술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솔직히 거의 없지 않나..?)

그리고 시장은 종종 이런 사람을 훨씬 비싸게 평가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조직 문제는
한 분야 내부의 문제라기보다
분야와 분야 사이의 통신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이오 팀은 개발자를 이해 못 하고 개발자는 바이오 팀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이해 못 한다.
연구자는 제품화를 모르고 제품 팀은 연구의 제약을 모른다.

이 사이를 이어주는 사람은 스펙 시트 상으로는 애매해 보여도 실제로는 매우 희귀한 자원이다.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길은 결국 가장 늦은 길이 된다

취업이 안 되니까 대학원 간다.
남들도 가니까 나도 간다.
AI가 뜨니까 AI쪽 대학원 간다.
AI 대학원에 가면 결국 LLM을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모두가 비슷한 문제를 붙든다.

이 흐름은 너무 자연스러워 보여서 오히려 위험하다.

다들 비슷하게 생각할수록
다들 비슷한 선택을 하고,
다들 비슷한 툴을 쓰고,
다들 비슷한 연구를 하고,
다들 비슷한 자기소개서를 쓴다.

그 결과는 뻔하다.
더 열심히 한 사람이 아니라,
더 자본이 많은 쪽과 좋은 자리를 선점한 쪽이 유리해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정해진 길을 더 빨리 걷는 능력보단 어디에서 길이 끝날 지 보는 능력이다.

LLM은 분명 강력하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엄청난 중심축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모든 것을 LLM 하나로 수렴시키는 사고는 위험하다.

진짜 기회는 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린 곳 바깥에서 생긴다.

그리고 앞으로 희소해지는 사람은
한 우물만 판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정해진 길은 편해 보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기에 덜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발자국이 겹쳐진 길 위에선 아무리 날뛰어봐도 결국엔 내 흔적조차 흐려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 위에, 과연 나는 내 발자국 하나를 남길 수 있을까?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